인류의 조상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함으로써 유인원과 다른 진화의 길을 걸은 것은 약 700만년 전 무렵에서 450만년 전 무렵 사이의 일이다. 이후 약 400만년 전에 ‘남방의 원숭이’라는 뜻을 가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나타났으며, 아프리카 동부에서 화석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두뇌의 용량이 현생 인류의 3분의 1 정도였고 구부정하긴 해도 두 발로 걸어 다녔으며, 자유로워진 두손을 이용하여 간단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인류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뭇가지를 도구로 사용하였으며, 점차 돌을 도구로 만들어 자기 몸을 보호하고 사냥과 채집을 하는 데 이용하였다. 이후 인류는 불의 사용 방법을 알게 되면서 음식을 익혀 먹게 되었고, 추위와 맹수도 막아낼 수 있었다.
현재의 인류는 20만년~15만년 전에 나타났다. 이들은 두뇌 용량 및 체질상의 특징이 오늘날의 인류와 같다.
3만 5천년에 나타난 거로 추정되는 크로마뇽인은 동굴 벽화에 사냥감을 그려놓았고, 풍만한 여인상을 조각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인류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지능발달과 함께 생각하는 능력이 생겨났고, 교류와 협력의 과정을 통해 주변 자연환경에 잘 적응하여 문화를 만들어 나갔기 때문이다.
구석기 시대는 인류가 등장한 이후 약 250만년 전부터 1만 2천년 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에 인류는 도구와 불을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했을 뿐 아니라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이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 시기에 집단적인 사냥행위가 이루어졌으며, 사냥술 발달과 함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인류는 아프리카를 벗어서 모든 대륙에 걸쳐 삶의 터전을 확대해나갔다. 도구, 불과 언어의 사용을 통해 인간이 살 수 있는 모든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이 시기에 골각기와 석기가 발달하였는데 이는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기술이 정교했음을 말해준다.
또한, 이 시기에 예술 행위, 시체의 매장 등의 행위가 나타났는데, 이를 통해 종교적인 믿음도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 대표유적은 평양 상원 검은모루 동굴, 경기 연천 전곡읍 전곡리, 충남 개군면 석장리, 전남 순천 월평, 경남 밀양 단장면 고례리, 대구 월성동 등 전국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한반도의 구석기인들은 돌에서 조각을 떼어 내어 제작한 뗀석기와 골각기를 주요 도구로 사용하여 사냥하였고, 나무 열매와 식물의 뿌리 등을 채집하였다.
구석기 시대의 초기 주먹도끼와 찍개 등 뗀석기는 짐승을 사냥하고 나무를 베거나 땅을 파는 등 거친 작업에 사용하였다. 또한, 구석기 시대 후기에 등장하는 슴베찌르개는 나무에 슴베 부분을 고정하여 창과 같은 모습으로 쓰인 대표적인 사냥 도구였다. 이 밖에 작고 정교한 긁개와 밀개, 새기개, 뚜르개 등은 사냥, 식량 가공, 도구 제작 등 다양한 용도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구석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은 대개 동굴이나 바위 그늘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구석기인들이 주로 동굴이나 바위 그늘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강가에 나뭇가지와 나뭇잎, 가죽을 이용하여 막집을 짓고 살기도 하였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큰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무리를 이루어 협동하였다.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사냥감이나 나무 열매를 찾아 이동하며 생활하였다.
한편, 구석기 시대에는 이동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지리에 밝고 이동 경험이 많은 지혜로운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 무리 사회를 통솔하였다.
약 1만 2천년 전에 빙하기가 끝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후빙기가 시작되어 기후는 매우 따뜻해졌다. 추운 환경에 적응하였던 구석기 시대의 생활 방식도 끝나게 되었고, 지역에 따라 새로운 기후에 적응하는 혁명적 변화가 시작되었다.
자연에 있는 것을 그대로 사냥하거나 채집해서 먹는 단계에서 인간 스스로 식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키워 식량을 생산하게 된 것이다. 즉,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었다. 농경과 목축을 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이동할 필요 없이 한곳에 정착하여 살 수 있게 되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식량을 채집한 것과는 달리,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식량을 생산하는 경제 활동을 전개하여 인류의 생활 양식이 크게 변하였다.
이러한 획기적인 변화는 물이 풍부하고 땅이 기름진 서남아시아 지방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세계 각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는 기원전 80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돌을 갈아 여러 가지 형태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간석기를 만들었으며, 흙으로 빚어 구운 토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사냥과 채집 등으로 생활하였던 구석기 시대에 비해 농경이 시작되면서 남은 음식물을 저장할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하였고, 이에 따라 토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토기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은 무늬가 없는 이른 민무늬 토기였다. 이어 토기 몸체에 덧띠를 붙인 덧무늬 토기, 토기 몸체에 눌러 찍은 무늬가 있는 눌러 찍기 무늬 토기 등이 만들어졌다.
이후 신석기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토기인 빗살무늬 토기가 만들어졌다.
또한, 이 시대 유적에서 가락바퀴와 뼈바늘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옷이나 그물 등을 만드는 원시적인 수공업 생산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농경의 시작은 정착 생활을 가능하게 해 주었고, 정착 생활로 인해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대개 움집을 지어 거주하였다. 움집은 모가 둥근 사각형이나 원형으로 땅을 파고 중앙에는 불을 피울 수 있는 화덕 장치를 마련하였고, 남쪽에 출입문을 만들어 햇빛이 잘 들어오게 하였다.
신석기 시대에는 정착 생활을 하면서 씨족 사회가 이루어지고, 다른 씨족과 결혼하는 족외혼을 통해 부족사회가 이루어졌다. 신석기 시대 후반에는 농경과 목축에는 적당한 강, 호수, 바닷가 등에 많은 사람이 정착하여 집단생활을 하게 되면서 점차 분업이 이루어지고 사유 재산이 생겨났으며, 이어 계층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신석기 시대에는 원시적인 종교의식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 조상 숭배의 신앙이 등장하였고, 신석기 후반에는 거석을 숭배하는 의식도 나타났다. 이 시기의 예술품으로는 흙을 빚어 구운 사람의 얼굴 모양, 동물을 형상화한 조각품, 조개껍데기로 만든 가면, 조개껍데기 또는 짐승의 뼈나 이빨로 만든 치레 걸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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