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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 수호 운동의 전개와 사상적 배경

by ㎣㎤㎥㎦ 2022.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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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청, 일 전쟁에서 승리하자 서구 열강들의 일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반면,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쥐고 있던 청은 서구 열강들로부터 영토 분할의 대상으로 전락하였으며, 러시아가 그 틈을 타서 세력을 확장하였습니다.

러시아가 만주를 장악하자 영국과 미국은 러시아의 철군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뤼순을 요새화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영국과 미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지지하였습니다. 이제 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일본과 러시아가 경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본은 대한 제국에 대한 권리를 독점하기 위해 외교적으로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먼저 일본은 영국과 영, 일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를 통해 영국과 일본은 러시아의 만주 진출을 막고자 하였습니다. 이후 일본은 러시아와 외교 교섭을 벌여 조선에서의 독점권을 인정받고자 하였으나 협상은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일본은 러시아를 공격하면서 러, 일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러,일 전쟁이 장기전으로 돌입하자 일본과 러시아는 재정적 압박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본은 대마도 해전에서 승리하면서 승기를 잡았고, 재빨리 미국에 협상 중재를 요청하였습니다. 당시 러시아도 혁명이 일어나 국내 사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양국은 미국의 중재에 의해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였고, 이로써 러,일 전쟁은 종결되었습니다.

 대한제국은 러일전쟁을 예상하고 미리 중립을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자, 일본은 전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서 대한 제국과 한일 의정서를 체결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일본은 대한 제국에 대해 정치적 간섭과 군사적 점령을 할수 있게 되었고 , 대한 제국의 중립선언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어서 일본은 제 1차 한일 협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이 협약을 통해 일본은 대한 제국의 재정 및 외교권을 결정할때는 일본과 상의하여 결정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재정 고문으로 메가타와 외교 고문으로 미국인 스티븐스를 파견하여 내정을 간섭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국제 정세를 살피면서 열강으로부터 대한 제국 침략에 대한 승인을 얻어 내었습니다. 먼저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하고, 대신 대한 제국의 지배를 승인 받는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영국과는 제 2차 영일 동맹을 체결하여 대한 제국의 보호 조치를 승인 받았습니다. 또한, 러일 전쟁이 끝나면서 러시아와 맺은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남만주는 물론 대한 제국의 지배권을 확실히 하였습니다. 이제 남은것은 대한 제국이 스스로 일본의 보호를 받겠다는 각서를 받는 일이었습니다.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여 강제로 보호 조약을 체결하려 하였는데, 고종황제와 관료들은 이를 완강히 거부하였습니다. 일본은 이완용 등 을사 5적을 앞세워 황제의 승인 없이 제 2차 한일 협약을 일방적으로 체결하였습니다. 당시 대한 제국은 황제가 외국과의 조약 체결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황제의 승인이 없이는 을사늑약은 성립될 수 없었습니다. 이 불법적인 조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당하고, 통감부가 설치되었습니다. 초대 통감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부임하여 대한 제국의 내정과 외교를 장악하였습니다. 

 고종 황제는 국내의 힘만으로는 을사늑약을 무효로 만들기 힘들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국제 사회에 호소하여 을사늑약의 무효를 얻어 내고자 하였습니다. 고종을 헐버트의 건의에 따라 1907년 헤이그에서 개최되는 제 2차 만국 평화 회의를 이용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상설, 이준, 이위종 3인을 비밀리에 특사로 파견하였습니다. 

  헤이그에 파견된 특사들은 영국과 일본의 방해로 발언과 회의 참석을 거부당하였습니다. 다만, 이위종이 국제 협회에서 조선을 위해 호소한다라는 연설을 할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결국 구체적인 성과는 낼수 없었고, 이준은 외교 활동 중에 사망하였습니다.

  일본은 헤이고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 황제를 강제 퇴위시켰습니다. 순종 황제의 즉위 이후 일본은 한일 신협약 , 통감의 권한은 강화되었습니다. 일본은 대한 제국 정부의 각 대신 아래 일본인 차관을 임명하는 차관 정치를 실시하였습니다. 대한 제국의 군대를 해산시켰습니다. 

  1910년 5월 제3대 통감으로 데라우치가 부임하였습니다. 그는 1910년 7월부터 전국을 사실상 계엄상태로 만들었습니다. 이로써 대한 제국은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였고, 36년간에 걸친 광복을 위한 투쟁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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